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문단 편집) === 여학생 위기설? 남학생 부진설? === 우리나라에도 《[[다른 목소리로]]》(In a Different Voice)의 출간으로 잘 알려진 심리학자 캐롤 길리건(C.Gilligan)을 위시하여, 많은 식자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사춘기]] [[소녀]]들'''을 경고하고 나섰다. 길리건의 신간 《Making Connections》가 [[1990년]]에 출간되고 나서 그야말로 사회적인 돌풍을 일으킴에 따라, 마침내 이것은 [[1990년대]] 교육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금언이 되었다. 이들에 따르면, '''10대 초반의 사춘기 이전 소녀들은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지만, [[사춘기]]를 겪은 이후인 10대 후반의 소녀들은 [[기를 죽이고 그래요|크게 위축되고 침묵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남성지배적 문화에 있다.]]''' 이들의 주장은 길리건이 제시했던 돌봄의 윤리(ethics of care)와도 연결된다. 말하자면, 소녀들은 소년들에 비해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과 속칭 '센스' 가 매우 뛰어나서 그야말로 타고난 심리학자라고 느껴질 정도이지만, 이러한 상호적 돌봄의 원칙은 소위 [[하인츠 딜레마]]로 대표되는 남성지배적 주류 사회의 도덕적 [[사회화]] 방향과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도저히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설' 에 대하여 곧 작가 프랜신 프로즈(F.Prose), 칼럼니스트 애나 퀸들런(A.Quindlen), 작가 캐럴린 세(C.See), 언론인 수전 치라(S.Chira), 기타 등등이 '''10대 소녀의 자화상을 위축되고 움츠러들고 고개 숙인 모습'''으로 그려 냄으로써 부응했다. 미국대학여성연합(AAUW;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Women)은 《Shortchanging Girls, Shortchanging America》, 《How Schools Shortchange Girls》 같은 보고서들을 잇따라 출간하면서, 위축된 여학생들은 미국의 비극이라고까지 성토했다. AAUW는 '남학생이 의견을 말하면 교사는 경청하지만, 여학생이 의견을 말하면 교사는 손부터 들라고 한다' 면서, 학교 현장에서 여학생들이 움츠러들고 그저 침묵을 지키려 하는 경향을 바꾸려면 교사들의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일련의 '여학생 위기설' 은 [[1994년]]에 '''교육 형평성 법안'''(Gender Equity in Education Act; HR1793)의 통과로 이어졌으며, 미즈 파운데이션(Ms. Foundation for Women)과 같은 비영리 여성단체들은 "딸과 함께 출근하는 날" 같은 운동을 펼쳐서 소녀들의 기를 살려 주려고 애썼다. 잠시 생각해 보자. 만약 학교에서 "거울 앞에 서서 내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미래의 나를 다정하게 격려하는 편지를 쓰고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기" 같은 활동을 하도록 담임 교사가 요구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저자에 따르면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반응은 천지 차이였다. 여학생들은 곧잘 그런 편지를 써 내려갔으며, 낭독이 끝나면 서로 울먹이면서 위로해 주는 훈훈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헌데 '''남학생들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의 집단 [[멘탈붕괴]] 표정을 지은 채 펜만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히 집중이 될 리가 없고, 교사는 그런 그들에게 자연히 "너희들 또 집중 안 하고 장난치지? 태도점수 감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벌점들은 이내 처참한 성적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저자가 보기에 여성 단체들이 교육계에 요구한 '자존감 증진' 방법론은 '''소년들에게는 너무나 부당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여학교에서만 이런 식으로 한다면 모르겠는데, 하단에서 따로 설명하겠지만 여성 단체들은 [[남녀공학]] 시스템 속에서 남학생들을 최대한 '소녀스럽게' 만드는 것이 [[성차별]]을 척결하는 지름길이라고 믿어 마지않았다. 여성 단체들의 방법론은 심지어 [[유치원]]과 [[어린이집]] 같은, 멋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향했다. 미국 북동부의 유명한 진보주의적 [[여대]]인 [[웰즐리 칼리지]](Wellesley College)는 [[1998년]]에 낸시 마셜(N.Marshall)의 세션을 통해, '''가급적 일찍부터 소년들이 [[인형]]을 갖고 놀게 하고, [[하이힐]], [[치마]], [[원피스]] 등을 입혀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이 말은 곧 여자는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하고 하이힐, 치마, 원피스 등을 입어야 한다는 거 아닌가-- 왜냐하면 젠더 도식(gender schema)은 [[빈 서판|유아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다가]], 이윽고 만2~7세 무렵에 유치원에서의 [[사회화]]를 통해 비로소 형성되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남자라 해도 여자처럼 다루면 여자가 돼|소년들을 이때 최대한 여성스럽게 키워 놔야 나중에 강간이나 가정폭력 등을 저지르는 '남자' 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마구 어지럽히고 뛰어다니며 장난감을 던지고 뒤엉켜 노는 것은 모두 '''폭력적 남성성을 내면화하는 첫 단계'''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닐 윌리엄스(N.Williams)는 [[피구]]나 [[의자앉기 게임]], [[육상#s-4.1.5|이어달리기]] 등이 '경쟁 놀이' 로서 약자를 배제하고 패배자의 자존감을 저하시킨다고 경고했다. LA 교육감 리처드 알론조(R.Alonzo)나 캘리포니아의 프랭클린초등학교는 [[술래잡기]] 또한 '술래' 라는 피해자를 만들기 때문에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서 술래잡기를 금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것이 저자가 전하는 90년대 미국 교육 현장의 현주소였다. 그렇다면 소녀들은 과연 학교에서 기 죽은 채로 지낼까? '''저자에 따르면 전혀 아니다!''' 자존감 증진 교육은 소년들은 둘째치고 소녀들에게조차 불필요했다. 이런 운동이 시작되던 90년대 초엽에서부터 이미 사회학자 로베르타 시몬스(R.Simmons) 같은 인물들이 비판했지만, 그 목소리는 언론에 거의 실리지 않았다. 언론은 늘 [[자존감]] 고양 교육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고,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회의론은 원치 않았다. 앤 피터슨(A.Petersen) 등의 발달심리학자들과 대니얼 오퍼(D.Offer) 등의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절대 다수의 청소년들은 정상적이고 잘 적응하면서 자신의 발달단계를 넘어간다고 하였으며, 수전 하터(S.Harter)의 여러 연구들은[* Harter, S., Waters, P. L., Whitesell, N. R., & Kastelic, D. (1998). Level of voice among female and male high school students: Relational context, support, and gender orientation. Developmental psychology, 34(5), 892-901.][* Harter, S., Waters, P. L., & Whitesell, N. R. (1997). Lack of voice as a manifestation of false self-behavior among adolescents: The school setting as a stage upon which the drama of authenticity is enacted. Educational psychologist, 32(3), 153-173.] 사춘기 소녀들이 젠더 운동가들의 사변적 학설보다 훨씬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고 못박았다. '''현실은 친구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하교하는 [[여고생]]들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그 여고생들은 학교에서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자존감 증진 교육은 심지어 여학생들조차 만족시키지 못했다. 교사가 입만 열면 늘 여자, 여자 하면서 핏대를 세우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하거나, 남성에 대해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거나, 개중에는 자기들 때문에 남학생들이 자꾸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걱정된다고 말한 여학생도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위기에 빠진 것은 여학생 쪽이 아니라 오히려 남학생들이었다.''' 남학생 부진설은 [[1990년대]] 말엽에 자존감 증진 교육의 효과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비로소 솔솔 피어올랐다. [[1997년]]에 공공교육네트워크(PEN; Public Education Network) 컨퍼런스에서는 [[메트라이프생명|메트라이프]](MetLife)의 후원으로 실시된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이때 아동심리학자 낸시 레퍼트(N.Leffert)는 학생 1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에서 여학생 위기설이 틀렸다는 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건강한 삶을 위한 40가지의 개인적 자산들 중에서 '''무려 37가지가 여학생 우위'''였던 것이다. 현대의 한 논문에서는[* Cornwell, C., Mustard, D. B., & Van Parys, J. (2013). Noncognitive skills and the gender disparities in test scores and teacher assessments: Evidence from primary school. Journal of Human resources, 48(1), 236-264.] 심지어 [[유치원]] 시절부터 여학생들은 정리정돈이나 주의집중, 얌전함 등으로 인해 교사에게 이쁨을 받고 남학생보다 태도점수에서 앞서간다고도 했다. 얼마 못 가서 [[2000년]]에는 그 교육부조차 《Trends in Educational Equity of Girls and Women》이라는 보고서에서 여학생들의 우수한 학업성취 수준을 전면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of College Admission Counseling)는 [[2002년]]에 "남학생들은 왜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가?" 를 의제로 삼기도 했다. 남학생들이 학업 포기자가 되면서 대학 신입생은 [[여초]]로 기울어졌고, 어느 정도 이상 여초가 심각해지자 이번에는 여학생들마저 뒤따라 입학자 수가 줄어들었다. 대학 입학처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였다. 남학생들에 대해서 여성 단체들과 젠더 운동가들이 "폭력적 남성성" 으로 규정한 것 역시 문제가 많았다. '''소년들이 보이는 여러 경향들은 보기만큼 폭력적인 문제가 없었다.''' 물론 소년들은 언뜻 경쟁과 과격한 대결을 즐기며, 패배자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비웃음을 사거나, 심지어는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소년들의 폭력이 과격하고 거친 놀이문화 때문에 생겨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전혀 아니다.''' 어린 남자아이들이 서로 뒤엉켜서 [[레슬링]]을 하듯이 마구 용을 쓰고 힘자랑을 하는 것을 흔히 신체놀이(R&T; rough-and-tumble)라고 하는데, 언어학자 드보라 태넌(D.Tannen)이나 유아교육학자 앤서니 펠레그리니(A.Pellegrini)는 '''R&T가 언뜻 공격적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서로를 뭉치게 하고 친밀하게 하며 협동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정말 모범적이고 반듯한 남자아이들도 R&T를 즐긴다. 그 놀이 중에 [[인싸|다른 남자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놀이 중에 누군가 다치거나 우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이다.]] 반면 정말로 '공격적인' 남자아이들은 오히려 R&T를 즐기지 못한다. 이들은 막상 R&T에 참여하려 해도 [[왕따|다른 남자아이들이 슬슬 피하는 식으로 거부당하거나 기피받기 때문이다.]] R&T 부정론자들은 대부분의 R&T 양상이 여러 소년들 중 하나가 끝내 다쳐서 울게 됨으로써 끝나게 된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R&T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이 정당하냐'''고 묻는다. 도리어 그것은 중요한 교육적 포인트다. 부모나 교사가 개입하여, 당황해하는 다른 소년들에게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우는 소년에게는 자신의 감정조절 능력을 길러주고 안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것. 그렇다면 AAUW나 웰즐리 칼리지를 비롯한 젠더 운동가들은 생각을 고쳐먹었을까? 1장에서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우울할 뿐이다. AAUW는 [[2008년]] 결의문에서 '''"우리는 남학생 부진설을 주장하는 모든 개인이나 단체를 [[백래시]] 내지 여성에 대한 적대세력으로 규정한다"''' 고 못박았다. AAUW 상임이사 린다 홀먼(L.Hallman)의 《Where the Girls Are》(2011) 보고서나, 로잘린드 바넷(R.C.Barnett)과 캐릴 리버스(C.Rivers)의 《The Truth about Girls and Boys》(2011) 보고서에서도 계속해서 이 [[백래시]]라는 단어는 지치지도 않고 활용되었다. 하지만 90년대의 잘못된 교육정책은 결과적으로 [[2000년대]] 대학 신입생 현황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주디스 클라인펠드(J.Kleinfeld)의 백악관 회의 보고서 등에서, 남학생들 4명 중 1명이 기초적인 수준의 독해력을 갖지 못했으며, 고등교육 진학포기율은 모든 [[인종]]과 경제적 지위에서 남성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아니, 오히려 유색인종일수록 남학생들은 뒷골목을 전전한 반면, 여학생들은 인생역전을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에 목숨을 거는 경향을 보였다. '''데이터는 [[백래시]]가 아니었으며, 실제로 여학생 위기설이 틀렸음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반증되는 사례에 대해서 젠더 운동가들이 귀담아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여성학자 수전 페이너(S.Feiner)는 "여학생이 남학생들을 앞서가니까 갑자기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이냐?" 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여성들의 저학력을 걱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만큼, 남성들의 저학력을 걱정하는 것도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한편 AAUW는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는 죄다 남성밖에 없는데 어떻게 여학생들의 성취가 앞서간단 말인가" 라고 반론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상층부에 남성이 더 많은 만큼, 실직자나 수감자 같은 하층부에도 남성이 더 많지 않은가? 물론 여학생들이 정말로 위기에 빠진 거라면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여학생들은 잘 헤쳐나가고 있고, 남학생들이 늪에 빠져 있다면, 그때는 그 남학생들부터 우선적으로 구해줄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 압력 단체들은 여학생 위기설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7월, 미국여성교육연합(NCWGE; National Coalition for Women and Girls in Education)은 [[Title IX]]의 40주년을 축하하는 《Title IX at 40》 보고서를 내면서, 여전히 여학생들이 '남성중심적인 [[실업계|직업기술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며 위기설을 견지했다. 교육부 산하 시민권사무국(OCR)의 《Gender Equity in Education》(2012) 보고서 또한 AAUW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다. 이 보고서는 AP 수학 과정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1만 명 가량 앞서고 있다는 점을 젠더 격차의 사례로 들어서 맹렬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AP 생물학]], [[AP 미국사]], [[AP 영어]]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을 최소 3만 명 가량, 심지어는 무려 20만 명 가량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는 함구했다. 저자는 이런 '''오도된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미국 사회가 유능하게 길러낼 수도 있었던 남성 인재들을 너무 많이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